2. 복식의 개요
로마네스크 시대의 복식은 게르만적 요소를 바탕으로 하여 십자군 원정으로 그리스, 로마의 전통을 계승한 비잔틴 복식문화와 고도의 동방문물이 융합되어 독특한 스타일을 형성했다. 동방의 독점 직물이었던 실크와 카튼의 수입으로 실크와 리넨, 실크와 울, 리넨과 울 등의 교직물이 생산되면서 달마티카와 튜닉은 블리오로 화려하게 발전하게 된다.
로마네스크 복식은 전체적으로 헐렁한 형에서 몸에 맞는 형으로 발전해 가는 과도기의 성격을 갖고 있다. 즉, 지퐁이나 블라오, 코르사주 등에서 이러한 변화과정을 뒷받침하는 재단의 발달을 추적할 수 있다. 또한 이때부터 남녀복이 분리되기 시작하고 여자복은 남자복보다 더욱 복잡하고 화려해졌다. 이 당시의 일반인들은 흰색의 리넨으로 만든 쉥즈 위에다 블리오를 입고 맨틀을 걸쳤다. 그러나 성직자의 복식은 여전히 비잔틴과 같았다.
이 시대의 서유럽 복식문화의 중심지는 프랑크 왕국에 뒤이어 탄생된 프랑스가 된다.
3. 복식의 종류와 형태
(1) 의복
블리오
블리오는 중류 이상의 귀족남녀들이 착용한 달마티카와 튜닉이 변형된 것으로 9세기 후반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달마티카처럼 몸통이 헐렁하고 소매통이 넓은 원피스 드레스였는데, 12세기부터는 상체가 몸의 윤곽선이 나타날 정도로 끼고 하체는 통이 넓어지게 되었고 발등을 덮는 길이였다. 몸통을 꼭 맞게 하기 위해 뒤나 옆을 트고 끈으로 X자로 묶었다.
이옷을 크게 특징 지우는 것은 깔때기처럼 넓게 퍼진 소매인데 소매 끝이 땅에 끌릴 정도로 긴 것도 있어 중간에 한번 잡아매기도 했다. 이 옷의 또 하나의 특징은 긴 허리장식 끈을 허리에 한 번 돌린 다음 다시 아랫배에서 매고 끝을 앞에다 길게 늘어뜨린 것이다. 이것은 여성의 가는 허리와 배의 둥근 곡선을 나타내려고 한 것인데 기독교 교의에 따라 체형을 드러내는 것이 금지되었던 그 당시의 현상으로 보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러한 곡선화의 경향은 평면적인 비잔티의 의복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그 후 유럽 여자복식의 실루엣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화이다.
블리오의 재료로는 인체의 곡선을 나타내기 위해 신축성이 있는 울과 실크의 교직을 많이 사용했고, 또한 정교하게 잔주름을 잡아서 기능성을 살리기도 했다. 요즈음에 우리가 입는 블라우스는 이 블리오에 기원을 두고 있다.
튜닉
중류 이상의 남녀가 블리오를 입는 동안 일반 서민들이 착용한 겉옷이다. 일반적으로 길이는 무릎 정도로 짧게 입고 벨트를 맸다. 이 시대의 달마티카는 튜닉의 일종으로 포함되며 브레와 함께 입었다.
쉥즈
리넨이나 얇은 울로 만든 튜닉의 속옷으로, 블리오의 밑에 입었다. 몸에 끼는 듯한 이 옷은 발목까지의 길이에다 폭이 좁고 소매통도 좁다. 둥근 목선의 앞부분을 1자로 트고 목선의 가장자리와 소매 끝을 금, 은실로 수놓거나 장신 밴드를 두르는 등 블리오 속에 입은 쉥즈는 비교적 화려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12세기에 귀족들이 실크를 많이 사용하면서 더욱 화려해졌다. 이 의상은 중세 말기에 슈미즈로 바뀐다.
코르사주
코르사주는 몸에 꼭 끼고 앞이 트이지 않은 조끼 스타일로 블리오 위에 입었는데 몸의 곡선을 나타내기 위해 블리오처럼 등뒤를 트고 끈을 끼워서 잡아당겼다. 조끼의 밑단은 배 밑으로 곡선을 이루는데, 긴 장식띠를 허리에 한 전 두르고 다시 코르사주 단을 따라 배 밑에서 매고 그 끝을 떨어뜨렸다. 신축성을 주기 위해 울과 실크의 교직물을 두, 세 겹 겹쳐서 누빈 것이 이 옷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화려한 것은 금, 은색의 실 등으로 모양을 넣어 누비고 보석으로 장식했다.
지퐁
십자군 병사가 착용했던 조끼 형태의 옷이다. 코르사주의 허리를 자른 것처럼 짧고, 겨드랑이 밑을 트고 끈으로 몸에 꼭 맞게 조였다. 울이나 가죽으로 패드를 넣었기 때문에 추위나 적군의 무기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듯 하다.
망토
이때의 망토는 프랑크인들이 7세기부터 10세기까지 사용한 형태와 별로 다른 점이 없었고, 블리오의 길이가 길어짐에 따라 망토의 길이도 길어 졌다.
브레
프랑크인들이 착용했던 것과 같은 형태의 일반 서민 남자들이 튜닉 밑에 착용한 헐렁한 바지로 리넨이나 울로 만들어졌다.
(2) 머리장식
11세기 남자들의 머리모양은 종래와 같이 짧은 단발이 주를 이루었다. 그들은 귀족이나 특수층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자를 쓰지 않은 대신 후드가 매우 유행했다. 후드는 로마 시대로부터 목동이나 농부들이 주로 착용해 왔으나, 이 시기에는 특정 신분에게 한정적으로 착용되지 않고 남녀공용으로 널리 애용되었다. 형태는 후드와 케이프가 혼합된 형으로 앞이 막혀 있어 얼굴만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후드의 또 다른 유형인 코이프가 상류층 여자들에게 애용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크기가 매우 작고 어린아이의 모자와 같이 턱에다 묶는 것으로 13세기의 대표적인 모자가 되었다. 농부들은 일광이나 비를 막기 위해 챙이 있는 모자를 쓰기도 했다.
여자의 머리 모양은 앞가르마를 타서 머리를 두 가닥이나 세 가닥으로 땋아 길게 내려뜨린 형태가 주를 이루었는데, 때로는 리본으로 머리를 함께 땋아 거의 발까지 닿을 정도로 길게 타래를 만들었다. 귀부인들은 관을 쓰기도 했고, 종교적 관습에서 수녀나 미망인에게는 필수적인 것으로 또 일반 부녀들은 외출 시나 종교적 행사 때에만 썼던 흰색의 베일이 있었는데 이를 웽플이라 했다. 또한 외투용의 맨틀을 어깨 위에서 덮어 내린 샤프가 있었으며, 목둘레를 덮어 얼굴만 내놓은 후드 스타일도 있었는데 ㅈ로 서민계층에서 애용되었다.
(3) 신발
이 시기는 근세와 같은 구두의 형식을 낳기 위한 과도기였으므로 목이 긴 것, 낮은 것, 짜올려진 것, 버클이 달린 것 등 여러 종류의 구두가 있었으며, 여자의 구두는 대개 낮은 것이었다. 동방과의 접촉이 빈번해지자 비잔틴의 영향으로 11세기말 경부터는 앞이 뾰족한 구두가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후의 고딕 감각이 이 시대에 이미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기로 갈수록 본격적으로 앞이 뾰족하게 돌출되었으며 뱀의 꼬리, 물고기 꼬리, 돼지 꼬리 같은 기발한 형도 나타났다.
재료는 보통 가죽인데, 특히 귀족의 신은 사치스러워 좋은 가죽 외에 실크와 벨벳등에 금실과 은실 등을 넣어 짠 교직물이 이용되었다. 여기에 진주, 보석을 달거나 자수로 장식을 하기도 했다. 더욱이 동방에서의 실크 수입과 모피의 자유로운 사용으로 더욱 화려하게 발달하여, 유럽 신발의 질은 이 시기에 급속히 향상되었다.
(4) 장신구
이 시대의 대표적인 장신구는 블리오의 허리오 아랫배를 매주는 허리끈으로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된 것은 상당한 고가의 품목이었다. 남자들은 십자군 전쟁에 나갈 때 성직자들에게서 축성받은 십자가를 보관하기 위해 앨모너라 불리는 주머니를 허리끈에 달고 다녔으며 후에 여자들이 이 유행을 이어받았다. 이것은 현재 여자들이 들고 다니는 핸드백의 모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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