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셋
몸을 가늘게 조이는 기구를 일반적으로 코르셋이라 부르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 당시에는 코르셋이라 부르지 않고 바스킨, 코르피케라고 불렀으며, 코르셋은 후에 붙여진 이름이다.
◈ 바스킨
바스킨은 코르셋의 일종으로 불어 명칭이고 영어로는 웨이스트코트나 웨일본드 바디스라 한다. 로마네스크 시대에 몸의 곡선을 내기 위해 입었던 코르사주와 같은 목적으로 입혀졌지만 르네상스에서는 허리를 인위적으로 조이는 정도가 코르사주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심했다. 바스킨은 앞이나 옆, 또는 뒤가 트인 조끼 형식으로 허리뿐만 아니라 가슴과 배까지 조이는 역할을 했다. 바스킨은 풀 먹인 리넨 천을 두 겹으로 재단하고 그 사이에 바스크를 넣어 딱딱하게 부풀려서 그 형태를 만들었다. 바스크란 나무뿌리나 고래수염, 금속, 상아 등을 재료로 하여 만든 얇은 패드로 이를 리넨 두 겹 사이에 넣어 패드의 역할을 하면서 모양을 유지하도록 촘촘하게 누볐다. 바스킨의 밑 부분에는 끈이 달려 있어 스커트를 부풀리는 속치마와 연결시킬 수 있게 디자인했다.
◈ 코르피케
몸을 조이는 코르셋의 일종으로 종래의 바스킨보다 더 강하게 몸을 조일 수 있도록 재료와 구성법이 한층 발달 된 것이다. 코르피케는 1577년에 나타나 다음 세기까지 계속된다. 형태는 바스킨과 별 차이가 없으나 두 겹 이상의 리넨을 겹쳐서 누벼 바스크의 딱딱함을 보강한 것이 특징이다. 앞 중앙 아래로 뾰족한 부분은 나무나 금속 등의 바스크로 딱딱하게 만들었다. 오프닝은 앞이나 뒤의 중앙에 있으며 끈으로 조여 맸다. 앞이 트인 드레스가 유행하자 코르피케의 앞면 장식이 중요해져서 아름다운 천으로 만들었다. 이와는 별도로 허리를 원하는 만큼 가늘게 조일 수 있도록 얇은 철제로 코르피케를 디자인한 것도 있다. 이것은 전, 후, 좌, 우의 네 조각으로 되어 있는데 앞의 가운데와 양 옆에 장식이 붙어 있고 뒤중심에서 고리나 죔 나사로 맞채웠다. 앞, 뒤 두장의 철편으로 된 것도 있는데 이것은 한쪽 옆에 장식이 있고 다른 편 옆쪽에서 고리로 잠그거나 볼트로 조이게 되어 있다. 이런 철판에는 작은 구멍이 전체적으로 나타나도록 디자인한 것 도 보인다.
버팀대
스커트 버팀대응 두 가지의 형태로 원추형과 원통형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
◈ 베르튀가댕
베르튀가댕은 스커트를 부풀리기 위한 원추형의 버팀대로 영국에서는 파팅게일 이라고 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로브는 스커트를 원추형이나 원통형으로 부풀린 실루엣을 가진 것이 중세 때의 드레스와 또 다른 점이다. 중세 말기 이후 스커트를 넓히는 연구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시도되었고 그 결과 플랙스나 리드, 울을 재료로 한 펠트로 속치마를 만들어 버팀대로 사용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마음껏 넓히고자 하는 시도는 15세기 후반에 스페인의 귀족의상에서 실현되었다. 허리를 조이고 힙을 크게 부풀린 이 실루엣은 귀족풍의 위엄, 박력,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데 퍽 효과가 있었다. 스페인의 궁정예법에 따르는 전아한 모드는 부강해지는 정치와 경제에 힘입어 큰 물결을 타고 유럽의 다른 나라의 궁정으로 빠르게 옮겨졌으며 각자 그 나라의 민족적인 것으로 각색되어 특징있는 모습을 나타냈다. 유럽의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각 나라에서 개성있는 드레스를 선보였는데 스커트는 모두 버팀대를 입어 부풀린 것이 동일하다. 버팀대에 따라 겉 스커트의 실루엣은 조금씩 달라졌다.
베르튀가댕은 스페인어에서 유래된 말로 가지가 잘 휘어지는 녹색의 어린 나무를 의미한다. 원래 베르튀가댕은 어린 나무를 뼈대로 하여 틀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으며 영국에서는 퍼딩게일로 명명되었다.
베르튀가댕이나 퍼딩게일은 등나무나 종려나무의 줄기, 고래수염, 또는 쇠줄 등으로 둥글게 크기가 다른 틀을 만들어 리넨이나 카튼 밴드로 감아서 풀 먹인 리넨 속치마에 꿰맨 것이다. 이때 작은 사이즈의 틀은 위에, 큰 틀은 속치마 아랫단 쪽에 사용했고 때로는 안감도 댔다. 색상은 흰색이 보통인데 붉은색, 회색, 노란색 등 여러 가지 색을 이용하기도 했다.
16세기 후에 이르러 베르튀가댕은 더욱 팽창된 오스퀴로 변한다.
◈ 오스퀴
16세기 후반에 나타난 스커트를 부풀리기 위한 버팀대로 베르튀가댕과 실루엣이 약간 틀리다. 즉, 베르튀가댕은 벨 모양을 이루는 데 비해 오스퀴는 자동차 바퀴를 여러 개 쌓아놓은 것과 같은 원통형의 실루엣을 이룬다. 오스퀴를 사용하면 스커트를 가는 허리에서 직각으로 크게 벌릴 수 있으므로 당당한 박력과 위엄을 느끼게 하여 당시 르네상스 시대의 귀부인들은 급격한 축소와 확대의 형태미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슈미즈
르네상스인들은 로브 속에 리넨이나 실크로 만든 슈미즈를 입었다. 슈미즈는 좁은 튜닉형의 원피스 드레스로 속옷을 말하는데, 언더튜닉이나 셔트로 표현하는 학자들도 있다. 슈미즈의 목둘레선에 댄 프릴이나 러플이 로브의 네크라인 밖으로 보이게 하다가 차차 목 근처로 올라가면서 앞가슴을 가리는 파틀렛을 형성했다. 소매는 좁고 길었으며 손목 둘레를 러플로 만들어 로브의 소매 밖으로 보이게 했다.
코트
중세 당시에 꼬뜨나 코타르디 위에 입었던 우플랑드와 쉬르코가 르네상스로 접어들면서 변형된 것으로 남녀공용이었다. 추울 때나 정식 모임에 나갈 때는 로브 위에 가무라를 입었다. 이 코트를 프런트 오프닝 형식으로 상체는 넉넉히 맞고 허리부터 스커트 부분은 풍성한 실루엣을 이룬다. 코트의 소매는 종류가 적은 것으로 보아 로브의 성격을 형성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못한 듯하다. 짧은 퍼프소매, 패드를 넣지 않고 소매 끝으로 갈수록 넓은 깔때기모양의 소매 등이 많이 애용되었고 슬리브레스도 많이 보인다. 앞의 오프닝에는 목선에서 허리까지 또는 목선에서 스커트 단까지 가는 리본 등이 달리기도 했는데, 앞 트임의 절반 내지 전부를 열어 놓아 속의 로브를 자랑하기도 했다. 앞이 트인 형식은 동방에서 들여온 것으로 남자복에서는 14세기경부터 푸르푸앵에서 그 영향을 볼 수 있음에 반해 여자복에서는 100여 년 후인 15세기부터 외투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방에서 14세기에 들여온 단추도 남자복에서는 일반적으로 편리하게 사용되었으나 여자복에서는 체형을 조여야 하는 필요성으로 끈이나 고리가 대신 사용되다가 19세기에 이르어 상, 하가 떨어진 투피스식의 의상이 유행되면서 상의에 단추가 이용되었다. 앞여밈도 앞 트임이 일반화될 때까지는 남자복에 준하여 오른쪽이 밖으로 오게 했다. 코트로 쓰인 옷감은 새틴, 태피터, 서지, 벨벳, 금, 은식을 넣어 짠 브로케이드 등으로 화려한 재료와 다채로운 색상을 사용했다. 겨울에는 모피를 안에 덧대기도 했다.
언더니커즈
부피가 풍성한 형태의 속바지로써 프랑스의 캐서린 드 메디치가 처음 입기 시작하여 상당한 유행을 만들었다. 상류계급의 사람들은 금실을 넣어 짠 화려한 실크로 만들고 일반인들은 리넨이나 얇은 울로 만들었다. 언더팬티를 입지 않는 이들 풍속에서는 언더니커즈가 누구에게나 필수적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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