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문화적 배경
그리스 문화는 기독교와 함께 서양문화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왔고, 그리스 복식은 대표적인 드레이퍼리형으로 로마로 연결되어 서양복식의 기본형이 되어 왔다. 그리스 복식의 특징은 정신, 육체, 의상이 완전하게 하나로 융합되어 창조되는 뛰어난 예술성에 있다.
그리스 복식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또는 간접적 요인으로 먼저 역사적, 지리적 배경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원전 1400년경부터 시작된 그리스인의 이동은 북유럽의 아드리아 지방에서 내려온 이오니아족의 이동에서 시작되었다. 소아시아에서는 아케아족이 더욱 남쪽으로 이동하여 미케네와 트로이를 점령하고, 그 뒤를 이어 호전적인 도리아족이 대륙의 본토뿐 아니라 지중해까지 진출하는 경로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방언에 따라 구분되긴 하지만 모두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동일 종족으로, 헬렌의 후손이라 하여 자신들을 헬렌즈라 하고, 국토를 헬라스라 칭하며 우월감을 가진 반면, 다른 민족은 바비로이라 하여 멸시했다. 이들은 점차 두 종족으로 통일되어 갔다. 하나는 주로 본토에 정착했던 도리아인이며, 또 하나는 에게해의 여러 섬들과 소아시아 연안에 살며 그 때문에 고대 근동과 밀접한 접촉을 가지게 된 이오니아인이다. 아케아인은 크리트 문명의 유산인 미케네 문명에 흡수되고 말았다.
그리스의 발전을 시대적으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알카익시대 : B.C. 1200~480년
◈ 고전 시대 : B.C. 480~330년
◈ 헬리니스틱 시대 : B.C. 330~146년
알카익 시대의 그리스는 이집트와 크리트의 혼합양식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고, 알카익 시대 후기부터 고전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순수하고 창의성 있는 그리스풍이 성립되었다. 헬레니스틱 시대에는 동방의 요소가 매우 강해 이미 그리스적 색채는 잃어 갔다. 그래서 그리스 복식은 고전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스는 대체로 기원전 1000년경까지는 촌락을 중심으로 한 민족공동체사회를 형성하다가, 토지제도가 사유화러 되면서 귀족정치로 변하고, 여기에서 그리스의 특수 형식인 도시국가의 성립을 보게 되었다. 아테네는 가자 먼저 개척되어, 원시 씨족사회에서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생긴 것은 그리스 역사에서 가장 큰 의의가 있는 것으로, 여기에 그리스 문화의 성격을 특징 지우는 모든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지리적 환경으로 인한 도시국가들 간의 오랜 분쟁 결과 아테네, 스파르타, 코린트가 그리스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이들 도시 국가들은 에게해와 지중해를 무대로 한 교역과 식민활동의 근거지로서 이집트,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페니키아로부터 방대하고 다채로운 철학, 예술, 학문, 풍속 등을 받아들였다. 또한 이러한 외래문화를 그리스의 독자적 성격으로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항해술의 발달을 시칠리아, 스페인 반도, 유럽 내륙 등지로 전파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들 폴리스는 정치단체라기보다는 종교적인 공동단체로 도시 중심에 수호신을 위해 제사 지내는 언덕이 있고, 그 밑에 아고라 광장이 자리 잡고 있어 집회나 시장 등의 장소로 이용되는 등 생활의 터전이 되었다. 아고라 광장을 중심으로 한 개방적이고 공동체적인 생활은 그리스 민주주의 발달의 요인이 되었다. 따라서 그리스 복식에서 계급을 의식한 엄격한 규제가 조장하는 기본적 형태의 차이는 보이지 않고 다만 경제적 부에 따라 소재나 장식상의 차이가 생겼던 사실은 이러한 그들의 생활방식이 초래한 결과였으리라고 생각된다.
법률과 헌법에 의해 공동체 안에서 개개인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은 폴리스 사회의 특징이긴 하지만, 폴리스가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사정 때문에 모든 것이 반드시 일률적이지는 않았다.
그중에서 이오니아인고 도리아인의 대조적인 환경은 양자를 더욱 다른 성격으로 발전시켰고, 그 특징은 풍습, 예술, 복식 등 모든 면에 놀라울 정도로 명백히 반영되었다. 도리아인은 일반적으로 상무적 기질을 갖고 있고 실제적인 데 비해, 이오니아인은 예술적으로 섬세한 감각을 갖고 있고 융화적이었다. 이것은 그들의 생업과도 관계되어 도리아인은 농업이 주산업으로 보수적이었고, 이오니아인은 상공업을 위주로 하여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기질을 가졌다. 이오니아 인들은 이러한 풍토에서 자연히 예술적으로 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그들의 사회구조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모권사회에서 부권사회로의 전환은 이오니아 인들의 대표적인 도시 아테네에서 훨씬 먼저 새롭게 행해졌다.
여자들의 지위는 매우 열등한 것으로 교육, 사교, 정치적인 기회에서 제외되어 집에서 육아나 가사를 돌볼 뿐이었고 직조, 자수나 재봉 등의 섬세한 작업에 열중하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은 자신들의 치장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 단순한 형태의 의복에다 입는 방식에 변화를 주든지, 직조술을 개발하거나 자수 등의 장식을 하여 그들의 개성과 미의식을 발휘하고자 했다
아테네의 여성적인 분위기에 비해 스파르타에서는 무권제가 늦게까지 지속되어 여자도 남자와 함께 자유로이 옥외에서 육체적인 단련을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상반된 양자의 성격은 도리아복과 이오니아복의 형태와 재료에서 그 차이점이 뚜렷이 나타난다.
도리아복은 두껍고 거친 울을 주로 사용하여 실질적이고 형태도 손발을 내놓아 활동적인 데 비해, 이오니아복은 얇고 부드러운 리넨으로 폭이 넓게 디자인되었기 때문에 우아하고 아름답긴 하지만, 비활동적인 느낌을 준다.
또한 당시 솔론이 아테네에 국영 창가를 설치했는데, 이것이 이오니아복을 더욱 호화스럽고 아름답게 이끌어간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창부는 교육을 받은 비교적 지성적인 여성으로서 화려한 의상과 함께 남성을 매혹시켰고, 당시의 패션 리더가 되었다. 아테네의 귀부인들도 그러한 여성들을 따라 점점 다채롭고 장식이 더해진 의상을 입게 된 것이다.
도리아복과 이오니아복의 성격은 건축양식과 비교해 볼 때 더욱 확실해진다. 그리스 건물의 특성은 많은 원주가 떠받치는 단순한 대리석 건물이라는 점인데 거기에 사용되는 원주의 종류에 따라 전체 구조의 양식이 결정되었다.
가장 오래된 초기의 도리아식 건축은 세로로 홈이 패인 튼튼한 원주의 주두가 매우 단순한 것으로 전체적으로 힘차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대표적인 건축물인 포세이돈 신전과 바질리카의 강건한 외양은 도리아복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후기로 갈수록 그 양식은 무르익어 갔는데, 파르테논 신전은 고전기 도리아식 건축의 완전한 양식으로서 그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육중한 느낌은 훨씬 적어 보인다. 오히려 그 두드러진 인상은 도리아 주식의 간소한 구성에 의한 명랑하고 균형 잡힌 우아함이다. 이것은 비례를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하고 재조정한 데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른바 세련됨, 즉 미적인 이유 때문에 엄격한 기하학적 규칙성에서 이탈했고 여기에 저차 곡선적인 감각이 들어가게 되어 건축의 필수적 요소인 조화미를 창조하고 있다. 이는 또한 도리아식 건물에 이오니아적 요소가 혼합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향은 건물 주위에서 항상 생활하고 있는 주민의 생활양식에 그대로 반영되었을 것이다. 도리아 복식이 초기의 단순하고 소박한 형태에서 점차 우아하고 여성적인 감각으로 변해간 것은 이를 설명해 주고 있다.
이오니아식 건축의 가장 뚜렷한 특색은 역시 원주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형태뿐 아니라 정신면에서도 도리아식과는 다르다. 즉, 대표적인 건물인 아크로폴리스의 니케 신전의 경우, 기둥의 몸통과 세로의 홈은 한결 가늘며 기둥머리는 소용돌이 모양의 스크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전체적인 느낌은 도리아식보다는 훨씬 경쾌하고 우아한 반면, 남성적인 성격은 결여되어 있다. 그 대신 성장하는 식물이나 형식화된 종려 나무와 같은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이오니아식 건물의 정교하고 심미적인 세련미는 의복에서 두드러진다. 즉, 바디스에 구성된 섬세하고 많은 주름은 원주의 정교한 홈을 연상하게 하며, 어깨에서 팔에 잡힌 곡선 주름은 이오니아식 원주에서 주두의 화려하고 곡선적인 스크롤 인상과 거의 일치한다.
이오니아식 원주의 발달은 코린트식을 낳았는데 코린트식 원주의 주두에는 아칸서스잎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마치 꽃과 잎이 돋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코린트식의 출현은 그리스 복식에 완숙미를 가져왔고 이들이 함께 로마에서 완성을 보게 됨으로써 건축양식이 복식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입증해 주고 있다. 이처럼 도리아와 이오니아의 성격의 차이는 그리스 복식 발달에 특징적인 요소로 작용해 왔다.
그리스 예술 가운데 복식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것으로 조각과 도자기를 들 수 있다. 이것은 복식 연구에서 보배와 같은 귀중한 자료들이다. 그리스의 조각은 그들의 우수한 예술적 능력이 가장 탁월하게 발휘된 것으로, 이전이나 이후의 어느 시대 조각에서도 이처럼 완전하고 사실적인 복식의 묘사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 조각들에 있어 복식의 이해에 무리가 가는 점은 거의 없으며 작품의 주제는 신화의 주인공이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인들이 신을 인간화했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의 신은 이상적인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있고 그들 스스로가 갖고 싶었던 모든 미덕, 예를 들면 위엄, 고귀, 자비, 사랑 등의 가치뿐 아니라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적 신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복식이 고대 오리엔트나 이집트 복식과 달리 전체적인 권위나 위엄에 얽매이지 않고 본연의 아름다움이나 인간성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도 이유도 이것이다.
조각에서 나타난 복식은 바로 그리스인의 평상시의 차림이었다. 이들 조각은 얼른 보기에는 흐르는 듯 유연하고 율동적인 감각으로 규칙의 지배를 전혀 받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나 실제는 엄격한 비례를 기반으로 하고 균현이 강조됨으로써 그들이 추구하던 이상적 원리가 그대로 표현된 것이다. 그중에는 불필요한 선이나 호화로운 점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 복식도 겉에서 볼 때 자유로움뿐인 것 같으나 황금분할을 이용한 엄격한 비례와 균형 감각이 지배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고 어느 한 부분을 강조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조화를 중시하고 있다. 더욱이 쓸데없는 장식이 배제되어 있음은 그리스 예술의 가치를 더욱 확실히 인식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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